Life/일상

야구장 아르바이트

maino77 2021. 5. 20. 11:33

어제는 석가탄신일로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기아 챔피언스필드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송중계 보조 알바로 SBS의 촬영장비를 나르거나 세팅하고 경기가 끝나면 철수작업을 돕는 일이었다.

아침 8시 30분까지 야구장에 도착하니 SBS버스가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SBS 스포츠 버스를 보니 신기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다른 알바생들을 기다리다가 모두 모이자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을 나르고 정리하는 작업을 했고 이후에는 보조장비들을 옮겼다. 이것을 다 끝낸 다음에 잠깐 쉬다가 카메라 감독님들이 오면 그때 카메라 관련 장비들을 각 위치로 옮겼다.

이때 힘들었던 것이 계단이 많고 특히 좁은 계단에서 길쭉한 촬영장비를 옮기는 것이 고역이었다. 야외석에 있는 위치까지 옮기는데 계단이 어찌나 많은지... 감독님들과 우리들은 장애인들을 위한 엘레베이터를 설치하지도 않았다고 궁시렁 거리면서 짐을 끙끙거리며 날랐다.

그렇게 설치가 끝나고 점심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쉬고 있는데 오늘 경기 상대인 SSG의 버스가 들어와 선수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버스가 도착하기 몇십분 전부터 SSG팬들이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선수들이 앞을 지나가자 팬들이 선수들을 응원하며 소리지르는데 그것을 직접 목격한 소감은 진짜 이런 팬이 있구나 싶었다.

나는 SSG팬도 아니지만 일단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 또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촬영했다. 주변에 있던 알바생이 내게 SSG 선수들 아냐고 물었는데 한 명도 모른다고 했다. 특히나 저 선수가 추신수가 맞냐고 물었을 때는 "아니, 그런 것도 모르고 찍어요?"하며 웃었다. 

야구 선수들을 모르는 내게는 선수 이름도 잘 모르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나마 얼굴을 알고 있는 추신수를 찾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내리는 것을 전부 찍었기 때문에 추신수를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추신수 선수

 

이후에는 점심을 먹었는데 도시락으로 준 밥이 생각보다 잘 나왔다. 콩 볶음, 미역 줄기 볶음,  동그랑 땡, 새우 튀김, 딸기, 오렌지, 제육볶음, 우동국물, 밥, 계란, 스팸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감독님들에게 들으니 기아가 주는 도시락이 다른 구장과 비교했을 때 퀄리티가 최고라고 했다. 도시락을 직접 받아보니 그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로 경기가 끝날 때까지 휴게실에서 쉬는 데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었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관중들이 많이 와서 그 장면을 찍어야겠다는 것이다.  관중 사이로 카메라가 들어갈 예정이며 그때 카메라 선을 정리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알바생들이 찢어져서 감독님들을 도왔다. 낮 최고 기온 29도에서 나는 관중석에서 카메라 선을 정리하는 일을 했는데 일 자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어렵진 않았다. 물론 나보다 쉬운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보다 힘든 일은 카메라 감독님을 쫓아 선을 조절하는 둘이 제일 힘들었을 것이다. 계단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날씨도 덥고 햇빛도 쭉쭉 내려쬐고... 나는 결국 팔과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타버려서 중간에 쉬는 타이밍에 감독님이 걱정할 정도였다.

중간 쉬는 시간에 찍은 사진

경기를 직접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할 수 있겠지만 원래는 시원한 휴게실에서 편하게 있을 것을 생각하면 결코 장점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알바생 둘은 경기가 빨리 끝나길 바랬다. 하지만 계속 볼로 베이스를 내주고 SSG이 앞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점수를 계속해서 가져가 경기가 질질 끌렸고 결국 이 경기가 제일 늦게 끝나게 되었다.

카메라 감독님과 우리는 못하는 애들이 꼭 시간은 다 쓴다고 KIA를 원망하며 철수작업을 시작했다. 외야석에 있는 장비를 다시 가져오는 것이 제일 힘들었고(계단이 문제다....) 나머지는 간단하게 싸서 수레에 담아 내려와 정리했다.

이렇게 철수까지 마치니 시간은 6시 30분이 되었다. 대략 철수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 것이다.

감독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고 다른 알바생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얼른 샤워를 마치고 차가운 팩으로 탄 얼굴을 식혔다. 그리고 잠에 들었는데 눈을 뜨니 12시였고 어머니가 오이를 썰어 빨갛게 탄 내 팔에 오이를 썰어 올려두고 계셨다.

반팔을 입어서 저부분이 탔다

저걸 하고 난 뒤에 다시 알로에를 발랐는데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빨갛다. 시간이 지나야 할 되돌아 올 것 같지만 그때까지는 따끔거리고 쓰라림을 견디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르바이트는 재밌었고 경기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햇빛이 문제였다. 이것만 아니었으면 좋은 아르바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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